[검찰동우] 대한공증인협회장 겸 국제공증인협회 아시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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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한양 댓글 0건 조회 2,804회 작성일 18-08-21 10:56본문
2012. 3. 26. 대한공증인협회는 법무법인 충정의 김진환 대표변호사를 협회장으로 추대하였다. 김진환 변호사님은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검 기획조정부장, 대구지검 검사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등 검찰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한국형사판례연구회장, 한국비교형사법학회장, 한국포렌식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으로 대한민국의 법률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김진환 변호사님은 검사 재직 시 바쁜 와중에도 학문적인 연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여 국비 장학생(총무처)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으며, 200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신장애 범죄자의 책임과 처우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각종 학회 및 포럼을 이끄시는 등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검찰 재직중 탁월한 기획능력을 인정받아 법무부, 대검의 주요 기획부서 업무를 두루 섭렵하셨을 뿐 아니라 국제검사협회(IAP)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검찰의 발전과 위상 제고를 위해 늘 앞장서 왔다.
검찰 퇴직 후 대형로펌 대표로 일하면서 대한공증인협회장 겸 국제공증협회 아시아 회장의 중책을 맡아 예방사법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증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계신 김진환 변호사님을 찾아뵙고 그 업적과 포부를 비롯하여 검찰 재직 시의 일화나 소회 등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2012. 3. 26. 대한공증인협회장으로 추대되셨는데 대한공증인협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한공증인협회는 국가 임명공증인 57개소, 인가 공증인 307개소(공증담당변호사 1,330명)를 회원으로 하는 법정단체입니다. 임명공증인은 법조경력 10년 이상의 법조인 중에서 법무부장관이 임명한 분들이고, 인가 공증인은 법무부의 공증인가를 받은 로펌을 말합니다. 공증은 잘 아시다시피 국가로부터 인증권한을 위임받아 사실이나 법률관계를 증명해주는 공적 인증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인정사회의 전통 탓인지 약속이나 거래 내용을 문서나 증거로 남기는 계약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해 불필요한 법률분쟁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보다 10만 명당 형사고소는 170배, 민사사건은 5배가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예방사법 기능을 가진 공증제도를 효율화하고, 이를 생활화하면 분쟁 및 소송남발에 따른 경제사회적 손실을 상당히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공증인협회에는 언제부터 관여하셨고, 협회장으로 취임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지요?
2010년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께서 대한공증인협회장에 취임하시면서 저를 수석부협회장으로 지명하셔서 꼼짝없이 잡혀 협회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1년 공증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법무부 공증제도개선 위원회』위원장을 맡아 여러 가지 개선책을 강구하다보니 2012년 정기총회에서 협회장까지 떠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충정도 공증인가를 받고 있어서 업무차원에서도 협조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법률문화의 창달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국제공증인협회 아시아 회장이기도 하신데 국제공증인협회의 조직과 구성은 어떠하며, 아시아 회장은 어떻게 선출되나요?
국제공증인협회(U.I.N.L)는 세계 86개국이 가입한 UN 자문기구입니다. 전통적으로 독일·불란서 등 유럽 각국이 강세이고 중남미 등 라틴 국가들도 발언권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2011년 정회원으로 가입하였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는 공증제도 도입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제공증인협회 아시아지역위원회(CAAs)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는데, 그때 일본·중국 등 주요회원 국가의 지지를 받아 아시아 회장에 선출되었습니다. 지역회장은 총회의 인준을 받아 활동합니다. 금년 7월에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아시아지역회의를 주재하였습니다.
최근 국제공증인협회 회의 참석차 페루에 출장을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출장 개요와 회의 참석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0월 남미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27차 국제공증인협회 총회 및 국제공증인대회에 제가 대한공증인협회장 겸 아시아 회장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총회에서 아시아지역을 대표하여 연설을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증시스템과 아시아 각국의 현황을 설명하여 우리 국력을 높이는데 일조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의의 초점은 고령화 사회에서 유언·상속과 관련된 부동산 거래 인증문제 등이었고, 다른 나라 공증인의 지위 및 처우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았습니다.
대한공증인협회장으로 취임하신 후 이루신 업적 중 특히 기억에 남거나 소개하고 싶은 업적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배들의 업적에 벽돌 한 장 얻는 정도이므로 특히 내세울 것은 없으나, 우리나라 공증인협회의 위상을 제고하고 공증인의 윤리의식을 높이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공증인 부책인가권을 법무부에서 협회로 이관받고 수수료를 받아 재정을 튼튼히 하고 강제집행의 권원이 되는 공정증서(집행증서) 작성의 대상이 종전에 금전소비대차와 약속어음에 국한하던 것을 2013년 4월 30일 공증인법을 개정하여 건물·토지·특정 동산의 인도를 구하는 경우에도 집행증서를 작성하도록 확대하였습니다(2013. 11. 29 시행). 향후 공증제도에 대한 신뢰도와 활용도가 높아지면 외국처럼 등기원인 행위에 대한 공증, 장기기증, 존엄사에 대한 공증도 실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 재직시절 부단한 연찬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으며, 한국형사판례연구회장, 한국비교형사법학회장, 한국포렌식학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으로 대한민국의 법률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셨는데 이는 학문에 대한 열정 없이는 도저히 어려운 일로 사료됩니다. 끊임없는 연구열과 학문에 대한 열정의 원천은 무엇인지요?
법학은 의학과 마찬가지로 실무계와 학계가 관학협동과 교차연구를 통하여 발전하여야 할 전문영역입니다. 의학 분야는 교수들이 대부분 권위 있는 실무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법학분야는 실무자와 교수들이 서로 벽을 쌓고 협업이 원활치 않아 안타깝습니다. 요즈음 로스쿨의 도입으로 실무자의 학계진출이 증가되었으나 아직도 많이 미흡한 편입니다.
제가 독일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대학연구소장인 교수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겸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경우 법학의 본질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학회가 실무자와 학계가 소통하고 협력하는 광장이라고 생각하여 비교적 적극 참여한 편입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바쁜 와중에서도 짬을 내어 학자들과 교류하며 판례의 흐름을 조망하고 외국의 제도와 실무에도 늘 관심을 보이는 넓은 시야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2008년 5월 출범한 700인 CEO 클럽의 회장을 역임하셨는데 700인 CEO 클럽은 어떤 모임이며, 지금도 계속 관여하고 계신가요?
오늘날은 무한경쟁시대이고, 로펌도 법률시장 개방으로 그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지식정보가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세계경영연구원(IGM)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한 700명의 CEO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 《700인 CEO클럽》을 만들었고, 제가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로펌도 법률회사이고 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정도경영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기업의 윤리경영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투명경영을 해야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 클럽을 이끌었습니다. 기업의 성공실패사례를 개발해 함께 학습하며 경영노하우와 최신경영기법, 리더십을 공유하는 ‘지식커뮤니티’로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임기를 마치고 명예회장으로 관여하고 있는데, 법조직역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보람이 있습니다.
1977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된 이후 약 27년간 검사 생활을 하셨는데 초임 시절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일화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공군법무관을 마치고 1977년 대구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고, 부산고검 설치 전이므로 대구고검이 부산·경남지역까지 관할하는 중심청이었습니다. 검사 수가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는데도 훌륭한 선배들이 많아 같이 근무한 차장, 검사 중에서 장관 2명, 총장 3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크지 못합니다. 스승과 같은 좋은 선배들의 자상한 지도가 성장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형사, 공안을 거쳐 특수부검사로 일했는데 검사장께서 대구의 유명인사 5명을 토색비리 오적으로 척결하라고 지시하여 여러모로 고생을 한 기억이 납니다.
일선 검사로 재직하시면서 특수 업무를 많이 담당하셨는데 수사와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검사는 수사기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사건들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마땅치 않은 듯싶습니다. 다만 북부지청의 젊은 특수검사로서 서울 일원에 엄청난 위조 약속어음을 유통시킨 대규모 약속어음 위조단의 계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이를 일망타진하여 경제 질서를 확립했을 때의 성취감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부산지검 특수부장 때의 대학입시 부정사건 및 광개토건설 분양사기사건, 서울동부 특수부장 때의 대형 토지경매 브로커 사건 등이 뇌리에 남아있고, 부산지검 2차장때 발생한 ‘페스카마 제15호 선상반란사건’, 서울북부지청장 때 발생한 ‘지하철 7호선 침수사건’을 철저한 수사로 수습한 일, 서울지검장 때 ‘이회창 후보 아들들 병역 의혹사건’ 의 진상을 명백히 밝힌 일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갑니다.
법무부 검찰1,2과장, 검찰국장이나 대검기획과장, 기획조정부장 등 검찰의 기획업무와 관련된 주요부서는 모두 섭렵하셨는데 기획업무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검찰재직 시 분에 넘치는 보직을 맡은 것에 늘 감사하면서도 큰 책임감을 느꼈고, 혹시 그때 업무처리에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없었는지 지금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일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우나 법무부 평검사 때에는 검찰청사나 관사 확보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등 검찰의 하드웨어 개선에 관심이 많았고, 관리자가 되어서는 검찰발전계획이나 인사 시스템 합리화 등 검찰운영 소프트웨어 개선에 중점을 두었으나,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요즘의 검찰 사태를 접하면서 선배로서 친정에 대한 무한책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1997년 12월 나라가 IMF 구제금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서울지검 제2차장검사(현1차장)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형사 1부장이 금모으기 운동을 펼치면 어떻겠냐고 제의해서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되어 검사장께 보고하고 당시 예정되었던 전직원회의시 『금모으기 캠페인』을 선언하였는데 들불처럼 범국민운동으로 전개된 바 있습니다. 물론 검찰은 수사와 공소로 국법질서를 바로잡아 가는 것이 본연의 기능이지만, 애국심을 기초로 검찰이 사회현상을 선도하는 메시지를 전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였다고 기억됩니다.
서울법대 재학시절 낙산문학회장을 맡으셨고, 법대 학보 FIDES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신 걸로 아는데, 검사 또는 변호사가 되신 이후 어떤 취미생활을 하고 계신지요?
법학도 폭넓은 인문학적 뿌리가 필요합니다. 대학 다닐 때에는 문학활동도 하고 법철학회장을 맡아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형평의 실체성에 대하여 고뇌도 많이 하였습니다. 법철학자 G. 라드부르흐가 “법의 미학”이라는 파트에서 법과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사색을 한 것처럼, 정의는 선(善), 미(美)와 연결된 인간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법률가는 ‘법속의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
검사가 된 뒤 업무와 동떨어진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없었으나, 변호사가 된 뒤에는 계간 〈시와 시학〉, 〈솟대문학(장애인 문예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법조인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입니다. 일을 마친 뒤 차 한잔을 들면서 좋은 음악을 한곡 듣고 시 한편도 읽는 여유를 갖기를 권장합니다.
최근 프로보노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2006년 아름다운 재단의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이 결성되었을 때 매년 일정액을 기부하고 변호사 1명분의 인건비와 10건의 공익소송을 지원하기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공익활동 사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종래 법조인들이 자신만 알고 공익활동에 소홀해온 탓인지 법조인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생각보다 더 차갑습니다. 고시에 합격했다고 존경받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습니다. 법조인과 법무법인이 더 몸을 낮추고 더 베풀어야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충정은 창립 20주년 된 로펌인데 프로보노 활동에 비교적 앞장서온 편이며 2009년 11월 보건복지장관으로부터 공로표창을 수상한 바도 있습니다.
최근 불치병 아동을 돕는 한국 메이크어위시재단, 대한변협구조재단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충남·보령, 홍성지구 유류피해어민 소송도 돕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개인적으로는 서울회현로타리클럽 회장, 재경부여군민회장등을 맡아 대외봉사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배 검사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조언이나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부분 검사들이 오로지 사명감으로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무슨 덧붙일 말이 있겠습니까? 공자의 말씀 중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君君臣臣),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父父子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답다’, ‘~답지 못하다’는 말은 매우 무서운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기관”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 검찰이 과연 검찰답다는 평가를 받는 길이 무엇인지, 어려울 때에는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홀로 삼가는 자세로 옷깃을 여미고 늘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검찰동우〉‘화제의 인물’(2014년 1월 제37호), 손기호 변호사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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